동쪽으로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동쪽 하늘은 파랗게 맑은데 서쪽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둡다. 장마철에는 특히 그렇다. 같은 도시인데도 하늘이 둘로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동쪽으로 걷고 싶어진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른다. 절경이 펼쳐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햇빛이 비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길 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빛을 따라가는 걸까, 아니면 비를 피하고 싶은 걸까.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하나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막상 걷다 보면 둘을 구별하기란 무의미해진다. 비를 피해 걷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햇빛을 좇고 있고, 햇빛을 좇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비를 피해 도망쳐 온 길이 되어 있기도 하다.
언젠가 농담처럼 말했다. 부처가 동쪽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동쪽으로 떠나고 싶다고. 돌이켜보면 목적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방향을 마주하고 서 있느냐가 전부였을 뿐이다.
그러다 또 엉뚱한 상상을 한다. 어쩌면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여행도 가능할 법하다. 지구 어딘가에 있는 백야를 따라 끊임없이 이동한다면 해를 오래도록 붙잡아 둘 수 있을 테니까. 물론 현실에서는 언젠가 밤이 찾아오고 먹구름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은 맑은 하늘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환해진다. 그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아갈 방향을 정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끔 동쪽을 바라본다. 그곳에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곳이 조금 더 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