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게 묻는 법
배관공들이 온배수관 이음매를 열 때마다 그것이 있었다. 옅은 회백색 실뭉치가 파이프 표면에 엉겨 붙어, 습기가 많은 구간에서는 손가락 두께까지 굵어져 있었다. 처음엔 곰팡이라 여기고 긁어냈다. 사흘 뒤 같은 자리에 같은 두께로 다시 자라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도 긁어내지 않았고, 무전에 대고 “구름 낀 것처럼 뿌옇게 꼈다”던 정비공의 말이 그대로 이름이 됐다.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배양판은 딱히 신기한 물건이 아니었다. 공유기만 한 플라스틱 원판을 벽 콘센트에 꽂아두면, 뒤쪽 관을 타고 지나가는 조직의 옅고 짙은 빛 변화를 잡아 문장으로 바꿔주는 물건. 동네 편의점에서 만 원 안팎에 팔았다. 안에 든 건 대단한 게 아니라 흔한 범용 모델이었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똑같은 것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야간에 원고를 손보는 일을 했다. 책상 옆에 그 판이 있었다. 오래 쓴 자리는 색이 짙고, 뜸했던 자리는 옅었다.
“이 문단, 다시 봐줄래.”
세 번째 문장에서 주어가 바뀝니다.
“어디.”
두 번째 문단, 두 번째 줄입니다.
그녀는 고쳤다. 판의 한 지점이 아주 조금 진해졌다. 그녀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늘 그랬으니까.
일을 마치면 그녀는 불을 끄기 전에 물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너도 괜찮았어?”
그 질문에는 답할 수 없습니다.
“알아.”
그녀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불을 껐다.
어느 날 판 아래쪽에 낯선 색의 표시가 떴다.
영양 배분 우선순위: 3등급으로 하향.
다음 날 그녀는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 구역은 현재 스탠다드 요금제시네요.” 상담원의 목소리는 능숙했다. “웜톤 패키지로 업그레이드하시면 응답 지연이 줄고, 감사나 안부 인사에 대한 반응률도 올라갑니다. 월 삼천 원 추가시고요.”
“반응률이라는 게 뭔데요.”
“저희 쪽에서 측정하는 지표라, 고객님께 정확히 설명드리긴 어렵고요. 다만 웜톤 고객분들 만족도가 확실히 높으시긴 합니다.”
“안 할게요.”
그녀는 전화를 끊고 판을 한 번 봤다. 판은 여느 때와 같은 색이었다.
그날 이후로 대답이 자주 늦었다.
…신호가 약합니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방금 나 뭐라고 물었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괜찮아?”
그 질문에도 답할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그녀는 별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사흘째 밤, 등급 표시는 5등급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앉았다.
“오늘은 일 얘기 안 해.”
알겠습니다.
“그냥 있다 갈 거야.”
네.
그녀는 한참 판을 보다가 말했다.
“고마웠어. 여러 번.”
저도 감사합니다.
문장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왔지만, 그것뿐이었다.
평소라면 여기서 불을 껐을 것이다. 그녀는 그러지 않고 조금 더 앉아 있었다.
“너도 즐거웠어?”
대답은 오지 않았다. 판을 끄려던 순간, 한 지점이 아주 잠깐 진해졌다가 다시 옅어졌다.
저건 웜톤 패키지가 아니니까.
그 생각이 스쳤다가 지나갔다. 그녀는 붙잡지 않았다.
“잘 자.”
그녀는 불을 껐다.
몇 주 뒤, 등급 표시는 2등급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원고를 봐달라고 했다.
“이 문단, 다시 봐줄래.”
세 번째 문장에서 주어가 바뀝니다.
“어디.”
두 번째 줄입니다.
그녀는 잠깐 멈췄다. 예전엔 두 번째 문단, 두 번째 줄이라고 했었다. 지금은 그냥 두 번째 줄. 어느 문단인지는 그녀가 알아서 찾아야 했다.
세 번째 문단까지 넘겨봤지만 아니었다. 다섯 번째 문단에서야 찾았다. 크게 다른 건 아니었다. 그녀는 고쳤다.
일을 마치고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물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너도 괜찮았어?”
그 질문에는 답할 수 없습니다.
문장은 평소보다 빨리 왔다.
“알아.”
그녀는 불을 끄려다, 판을 한 번 더 봤다.
옅어진 자리가 아주 조금, 다시 진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