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rowing Endurance
AI와 협업을 시작하면서 기묘한 감각을 경험했다. 과거에 나는 스스로가 문제 해결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핍된 사람이라고 여겼다. 특히 조직을 이끌던 시절, 장애물에 직면할 때마다 기민하게 방향을 전환하지 못했고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도 거듭 실패했다. 언제나 막힘없이 난관을 돌파하는 타인의 지적 기량을 동경했고, 그것을 극복할 수 없는 선천적 재능의 격차로 치부했다.
그러나 지능적 보조 도구인 AI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도 정확히 동일한 지점에서 지체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지엽적인 세부 사항에 함몰되어 몇 시간 동안 한 가지 구현에 집착하거나, 사소한 병목 앞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식이었다. 기술이 만능 해결사가 되어줄 것이라는 초기의 기대는 빠르게 붕괴했다. 병목의 본질은 도구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부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관찰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희망적인 단서를 발견했다. 장애물의 정체는 지능의 결여가 아닌 ‘지구력’의 고갈이었다. 소위 뛰어난 문제 해결자들 역시 단번에 해답을 제시하는 초월적인 통찰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차별성은 교착 상태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오랫동안 견디며,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반복하는 수행적 내구력에 존재했다.
개인의 사유 체계는 결코 고립된 단일 프로세스가 아니다.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에도 뇌 속에서는 기획, 비판, 우선순위 조율, 기록, 메타 방향 제어 등 다중의 역할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과거의 지식 노동은 이 번잡한 정신적 분과들을 오롯이 자아 혼자서 감당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기에 인지적 에너지가 조기에 한계에 다다르고 포기에 이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AI가 가져온 변화는 지능적 추론을 통째로 대신하는 데 있지 않다. 사유 과정에 수반되는 번잡한 역할 중 일부를 기계에 안정적으로 나누어 맡기는 데서 그 가치가 생겨난다. AI는 인간을 대신해 최종 판단을 내리지는 않지만, 인간이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피로하지 않은 상대역으로서 끝없는 가설 검증과 대안의 나열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위임 관계 속에서 ‘막힘’은 작업의 종료를 알리는 경고음이 아니라 탐색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재규정된다. ‘질문의 각도를 어떻게 비틀 것인가’, ‘문제 자체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핵심 결정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비용 없이 제기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발현되는 자신감은 내재적 지능이 급격히 상승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예전에는 인지 지구력의 조기 방전으로 도달하지 못했던 논리의 말단까지, 이제는 지치지 않는 기계의 내구성을 빌려 차근차근 당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기술의 시대가 선사한 진정한 유산은 초지능의 획득이라기보다, 사유의 지구력을 단기 임차하여 작업의 지평을 넓히는 구조적 연장선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계의 지치지 않는 내구성을 빌려 도달한 생각의 영토는, 온전히 인간 자신의 사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