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 감수성

에세이 2026. 08. 07.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를 서포터형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일보다, 작은 도구를 만들고 반복되는 작업을 줄이고 워크플로우를 관찰하며 팀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예전에는 그것이 단순한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이유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마찰 감수성이 높은 사람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넘기는 작은 불편함을 오래 바라본다. 왜 불편한지, 어디에서 시간이 새고 있는지, 어떤 구조 때문에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를 계속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런 마찰을 없애기 위한 도구를 만들고, 작업 방식을 바꾸고, 시스템 자체를 조금씩 개선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돌이켜 보면 지나쳐 온 관심사들도 대개 그런 모양이었다. 작은 유틸리티, 내부 도구, 자동화, 개발자 경험, 워크플로우 개선, 최근의 AI 에이전트까지. 형태는 달랐지만 사람이 일하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다듬는 일에 늘 마음이 갔다.

AI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그 생각은 더욱 뚜렷해졌다.

기껏해야 반년 남짓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워크플로우를 실험했고, 몇 번이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지금 보면 민망할 정도로 엉성한 구현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작업물을 재미있게 써 주기도 했고, 작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뜻밖의 PR을 받아 보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구를 쓰는 기술보다 AI와 일의 합을 맞추는 감각이 먼저 쌓였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나눌지, 컨텍스트를 어떻게 전달할지, 어떤 정보는 미리 정리해서 주고 어떤 정보는 검색하게 둘지, 여러 에이전트를 어떻게 협력시킬지. 이런 고민들은 결국 사람과 AI를 포함한 하나의 작업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로 이어졌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돕고 싶었던 대상이 프로그래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예전부터 기획자는 어떤 순간에 맥락을 잃는지, 아티스트는 어디에서 시간을 쓰는지 궁금했다. 그들의 일을 더 잘 이해하면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때는 내 두 손이 너무 바빴다. 직접 구현하고, 직접 만들고, 직접 연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에이전트가 구현을 상당 부분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손은 이전보다 한결 여유로워졌다. 대신 머리가 바빠졌다. 이제 병목은 코드를 입력하는 속도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발견할 것인지,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일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 것인지에 있다. 에이전틱 코딩의 시대를 맞아 편해진 것은 내 두 손이고, 힘겨워하는 것은 내 작은 머리다.

그래도 이 변화는 반갑다. 손이 바쁠 때는 아이디어를 실행하기도 전에 포기해야 했다. 이제는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고,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일을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언젠가 내 커리어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야 한다면, 프로그래머보다 이런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그 안의 마찰을 찾아내며, 그것을 조금씩 없애는 사람.

프로그래밍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익숙한 도구였을 뿐이다. 앞으로는 AI도, 기획자도, 아티스트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코드가 쌓이는 모습보다,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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