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닐 수도 있고

에세이 2026. 08. 29.

요즘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일이 조금 재미있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쓴 글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글들이다. 생각의 재료를 던지고 AI와 오래 이야기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걷어내고 다시 고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장이 하나 남는다. 그러면 그 문장이 좋은 이유보다 왜 이런 문장을 골랐는지가 궁금해진다.

예전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멋쩍었다.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어내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문장을 읽으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여기서는 너무 많이 설명했고, 이 문장은 지나치게 예쁘고, 이 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재미가 없다. 그러다 보면 마지막에는 제법 마음에 드는 글이 남는다.

그런데 요즘은 그 과정도 글쓰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쓸지 결정하는 일만큼 무엇을 남기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도 취향을 드러낸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계속 골라내다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좋아하는지도 조금씩 보인다.

나는 아마 너무 매끈하게 정리된 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하나의 결론으로 곧장 달려가는 글보다 어떤 생각이 다른 생각과 부딪히면서 처음의 모양을 조금씩 바꾸는 글에 더 마음이 간다. 변증법이라는 말을 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부터 그것도 하나의 설명이 된다.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비슷하다. 무언가를 부정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방금 만든 설명을 너무 오래 믿지 않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글을 읽거나 쓸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어떤 구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곳에서 다시 발견한다. 처음에는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 같은 모양으로 겹쳐진다. 그러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처음의 생각을 그대로 확인하기도 하고, 처음의 비유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후자가 오히려 재미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보다 무엇을 계속 바라보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됐다.

예전에는 스스로를 서포터형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보다 이미 있는 작업에서 불편한 부분을 찾아내고, 작은 도구를 만들어 없애는 일을 좋아했다. 효율을 좋아하고 반복을 싫어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 역시 조금 다른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일하는 방식의 마찰을 오래 바라보는 편이고, 글을 쓸 때는 생각 사이의 마찰을 오래 바라본다. AI와 이야기할 때도 답을 얻는 것보다 답을 다시 흔들어 보는 과정이 재미있을 때가 많다.

AI를 사용하면서 이 과정은 더 쉬워졌다.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고, 그 문장을 다시 읽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고, 다른 문장으로 바꿔 보는 일을 아주 빠르게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되돌아오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취향이 문장 사이에 남는다.

나를 직접 들여다본다고 해서 나를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남긴 문장이나 만든 구조를 한 발 떨어져 바라볼 때 오히려 내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가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다음에는 또 그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생각을 만들고, 생각을 바라보고, 그 생각을 바라보는 나를 다시 바라본다. 한참 올라갔다가 어느 순간 별것 아닌 농담 하나를 하고 다시 내려온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 글도 나를 설명하려고 쓰고 있는 건지, 내가 나를 설명하려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닐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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