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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이는 어떻게 개념을 배우는가

구조 노트 Chapter 17 2026. 07. 17.

놀이터에서 개를 보고 “멍멍이”라고 외치던 아이가, 며칠 뒤 산책 중에 고양이를 보고도 똑같이 “멍멍이”라고 외친다. 부모가 웃으며 “아니야, 저건 야옹이야”라고 정정해 준다. 아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 말을 받아들이고, 다음번에 다른 고양이를 봤을 때는 정확히 “야옹이”라고 부른다.

이 장면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아이는 개의 정의를 배운 적이 없다. “네 다리로 걷고, 짖는 소리를 내고, 꼬리를 흔드는 동물”이라는 문장을 누구도 아이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부모가 해 준 일은 그저 개별 사례 하나를 짚으며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 준 것뿐이다. 그런데도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개”라는 범주와 “고양이”라는 범주의 경계가 점점 또렷해진다.

2장에서 같음의 기준은 이미 정해진 규칙을 코드나 사고 안에 적용하는 문제였다. 지금 아이가 하고 있는 일은 그 순서를 뒤집는다. 규칙이 먼저 주어지고 그 규칙을 사례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사례들을 하나씩 마주치고 때로는 틀리고 정정받으면서 규칙이 나중에야 흐릿하게 떠오른다. 개를 개라고 부르는 기준을 아이에게 말로 설명해 보라고 하면 아마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개념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낯선 골든리트리버를 처음 봐도 아이는 주저 없이 “멍멍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학습이 완벽한 사례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마주치는 개는 매번 크기도 다르고 털 색깔도 다르고 짖는 소리의 높낮이도 다르다. 심지어 늑대 인형처럼 개와 헷갈릴 만한 애매한 사례도 섞여 있다. 그런데도 아이는 이 뒤죽박죽인 사례들 속에서 “개다움”이라는 흐릿한 중심을 찾아낸다. 한 번의 정의로 경계선을 긋는 대신, 여러 번의 시도와 정정을 거치며 경계선이 조금씩 좁혀지고 다듬어진다.

이 방식에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아이는 정정을 받을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지 않는다. 이미 가지고 있던 “멍멍이”라는 범주에서 고양이에 해당하는 사례만 살짝 떼어 내어 “야옹이”라는 새로운 자리로 옮긴다. 범주 전체를 허물고 다시 짓는 대신, 기존의 틀을 유지한 채 경계선만 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이가 하고 있는 일은 정의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례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무언가를 스스로 압축해 나가는 작업에 가깝다.

이 압축은 아이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의를 먼저 주지 않고 사례만 잔뜩 보여준 뒤 스스로 규칙을 찾아내게 만드는 방식은, 최근 몇 년 사이 전혀 다른 곳에서도 낯익은 풍경이 되었다.